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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알림센터

전경철 작가 별세|나이|사망 원인|아들 전제원|저서 책|가족 부인|

by 정보알림센터 2026.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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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철 작가 별세|나이|사망 원인|아들 전제원|저서 책|가족 부인|


전경철 작가는 중증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들 제원 씨를 27년 동안 홀로 돌보며 살아온 ‘피터팬 아빠’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인물입니다. 기업인으로 오랜 시간 사회생활을 이어왔지만, 아들의 장애 진단 이후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자신이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뒤에도 자신의 치료보다 먼저 아들이 살아갈 보금자리를 찾는 데 모든 힘을 쏟았습니다. 전국 수많은 장애인 돌봄시설의 문을 두드렸지만 쉽게 거처를 구하지 못했던 그의 이야기는 방송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이후 아들이 머물 수 있는 보금자리를 찾게 되면서 비로소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었지만, 그는 끝까지 다른 발달장애인 가족들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꿈을 놓지 않았습니다. ‘안녕, 피터팬’이라는 책에 자신의 삶과 아들에 대한 사랑을 담아낸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발달장애인의 미래를 걱정했던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2026년 9월 5일, 향년 64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습니다.


❖ 이름

전경철

 

❖ 생년월일

1962년생

 

❖ 사망 일자

2026년 9월 5일

❖ 나이 / 향년

64세

 

❖ 국적

대한민국

 

❖ 고향

충청남도 공주시

 

❖ 본관

정선 전씨

❖ 학력

연세대학교 (경제학 / 학사)

❖ 주요 이력 / 경력

오름아이텍 대표이사

 

❖ 가족 관계 / 집안

부모님

아버지

어머니

배우자 / 부인

이혼

자녀

아들 전제원

❖ 종교

공개되지 않음

 

❖ 저서 / 책

안녕, 피터팬

❖ 전경철 작가 사망 원인 / 사인

간암 악화

 

❖ 전경철 작가 빈소 / 장례식장

장례는 고인의 평소의 뜻에 따라 무빈소 장례

 

❖ 전경철 작가 추모 / 애도

전경철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중증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들 제원 씨를 27년 동안 홀로 돌보며 살아온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피터팬 아빠’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들이 평생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동화 속 피터팬에 빗대어 표현했던 그는, 자신의 남은 삶마저 아들이 살아갈 세상을 마련하는 데 바쳤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떠난 뒤에도 아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을 찾은 뒤, 생의 마지막 시간을 조용히 준비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전경철 작가는 1962년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습니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IT 법인 오름아이텍의 대표이사를 약 25년간 맡으며 기업인으로 살아왔습니다. 사회적으로는 한 기업을 이끌어온 경영인이었지만,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의미를 차지했던 것은 단연 아들 제원 씨였습니다.

 

아들 제원 씨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은 것은 네 살 무렵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몇 년 뒤 아내와 이혼하면서 전 작가는 어린 아들을 홀로 키우게 됐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부자의 생활은 어느덧 27년이라는 긴 세월로 이어졌습니다. 제원 씨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일상적인 의사소통과 사회생활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고, 의학적으로 평가된 사회성 연령은 2.3세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몸은 어른으로 성장했지만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은 어린아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전 작가는 그런 아들을 ‘피터팬’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른이 되지 않는 동화 속 소년처럼 아들 역시 평생 누군가의 도움과 보호가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 작가는 아들을 부담이나 희생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오랜 돌봄의 시간 속에서 아들이 자신에게 주었던 행복을 소중하게 기억했습니다. 그는 훗날 방송에서 지난 27년을 두 살 아이를 27년 동안 키운 것과 같았다고 설명하면서도, 아이가 주는 짧은 행복이 힘들고 고단했던 순간들을 덮어주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은 그 행복을 27년이나 누렸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는 그의 말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부자의 이야기가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2026년 3월 12일 방송된 MBC ‘실화탐사대’를 통해서였습니다. 당시 방송에서는 중증 자폐를 가진 아들과 치매와 뇌경색을 앓고 있던 어머니를 동시에 돌보던 전 작가의 현실이 소개됐습니다. 그에게는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가족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2025년 4월, 전 작가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간암 말기 진단과 함께 치료하지 않을 경우 기대 여명이 약 6개월 정도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보통이라면 어떻게든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치료를 선택했을 상황이었지만, 전 작가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자신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떠난 뒤 제원이는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걱정이었습니다. 그는 남은 6개월 동안이라도 아들이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아놓을 수 있다면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아들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항암 치료를 미루려고 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아들이 살아갈 곳을 찾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전 작가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국의 장애인 돌봄시설을 찾아다니며 약 1,000곳에 연락하고 문의했습니다.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중증 발달장애인을 24시간 가까이 돌보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력과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아들을 돌볼 수 있었지만, 자신이 사라진 이후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막막했습니다. 그렇게 시설을 찾아 헤매는 사이 그의 몸 상태는 점점 나빠졌습니다. 결국 더 이상 치료를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전 작가는 다시 병원을 찾아가 치료를 받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아들이 아직 살아갈 집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었다고 합니다. ‘치료도 받을 테니 6개월만 더 살게 해달라’는 그의 호소는 당시 그의 상황이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보여주는 말로 남았습니다.

 

전 작가가 아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여러 일화를 통해서도 알려졌습니다. 한때 제원 씨의 체중이 160㎏까지 늘면서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 되자, 전 작가는 냉장고에 쇠사슬과 자물쇠를 채우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사용하며 식단을 관리했습니다. 그렇게 1년여 동안 꾸준히 관리한 끝에 아들의 체중을 약 70㎏ 감량시켰다고 합니다. 때로는 아들과 몸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몸에 상처가 남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 작가는 그것을 자신이 감당해야 할 고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의 생명과 건강이 걸린 문제라면 아버지로서 외면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장애인 가족이 짊어지고 있는 돌봄의 무게가 단순히 ‘가족을 사랑한다’는 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실화탐사대’ 방송 이후 부자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관련 영상에는 수백만 회에 이르는 조회가 이어졌습니다. 전국에서 도움의 손길과 응원이 전해졌고, 전 작가가 브런치에 연재했던 자신의 이야기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게 됐습니다. 그의 회고록은 이후 ‘안녕, 피터팬’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로 출간됐습니다. 책에는 아들과 함께 살아온 세월, 부모로서 느꼈던 사랑과 두려움, 장애인 가족이 마주하는 현실, 그리고 자신이 떠난 이후 아들이 살아갈 세상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겼다고 전해집니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던 소식은 제원 씨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마련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방송을 통해 마침내 제원 씨가 365일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거처를 찾았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전 작가에게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아들이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순간이었습니다. 27년 동안 단 하루도 떨어져 지내지 않았던 아들을 자신의 곁에서 떠나보내는 일은 아버지에게 또 다른 큰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 작가는 자신이 없는 미래를 위해 아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오랜 세월 아들을 직접 돌보며 살아온 만큼 그 이별은 쉽지 않았겠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가장 간절하게 바라던 일이기도 했습니다. 아들이 자신이 없어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이야말로 전 작가가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2026년 8월 12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355회에 출연한 전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세상에 전했습니다. 방송에서 그는 아들과 함께했던 세월을 담담하게 이야기했습니다. 특히 자신이 떠난 뒤 아들이 자신을 기다리며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하면서도, 아들이 자신을 완전히 잊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언젠가 아들의 기억 속에 자신이 정확하게 누구였는지는 남지 않더라도, 희미하게 떠오르는 한 남자가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봐 주었고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었던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한 27년을 생각하면 참으로 먹먹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방송을 지켜보던 유재석 역시 눈물을 보였고, 시청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전 작가는 자신의 아들을 위한 집을 찾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인 다른 발달장애인 가족들을 위해 ‘네버랜드’라는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었습니다. 최중증 발달장애인들이 24시간 돌봄을 받으면서도 한곳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고, 제원 씨와 같은 ‘피터팬’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마을을 전국 곳곳에 세우겠다는 구상이었습니다. ‘안녕, 피터팬’에서 발생하는 인세와 관련 수익 역시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재단 설립과 공동체 조성에 사용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자신의 아들 한 사람만을 위한 삶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많은 가족들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들을 위한 거처를 마련한 뒤 전 작가는 자신의 마지막도 조금씩 준비해갔다고 전해집니다. 고향인 공주에 있는 부모와 조부모의 묘를 파묘하고 같은 자리에 수목장으로 이장했으며, 집안의 제례용품과 족보, 자신이 쓴 에세이 ‘안녕, 피터팬’을 공주에 있는 충청남도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고 합니다. 또한 가까운 친구 한 명에게 장례를 비롯한 이후의 절차를 모두 맡기면서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남은 가족과 자신의 흔적을 하나씩 정리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숙연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에게 이러한 준비는 단순한 죽음의 준비가 아니라, 자신이 없는 세상을 아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씩 정리하는 마지막 돌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2026년 9월 5일 토요일 오후 7시 56분, 전경철 작가는 향년 64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9월 6일 전해졌습니다. 정유진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대표가 SNS를 통해 그의 별세 소식을 알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고인의 마지막을 접하게 됐습니다. 전 작가는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에 안치됐으며, 평소 자신의 뜻에 따라 빈소를 따로 마련하지 않는 무빈소 장례로 장례 절차가 진행된다고 전해집니다. 발인은 9월 7일 오전 12시에 진행되며 장지는 충남 공주 선영으로 알려졌습니다.

 

전경철 작가의 삶을 돌아보면 ‘아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 아버지’라는 표현만으로는 그의 인생을 모두 설명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는 기업인이었고 작가였으며, 한 가정의 아버지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까지 세상에 남긴 가장 큰 메시지는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가 느끼는 불안과 책임, 그리고 그 안에서도 피어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27년 동안 아들을 직접 돌보며 그는 하루하루를 살아냈고,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서도 가장 먼저 아들의 미래를 걱정했습니다. ‘내가 죽고 나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은 발달장애인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두려움이기도 합니다. 전 작가는 자신의 삶을 통해 그 질문을 세상에 던졌고, 동시에 그 문제를 개인 가족의 책임으로만 남겨두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특히 그의 마지막 꿈이었던 ‘네버랜드’는 전경철이라는 한 아버지의 꿈을 넘어 우리 사회가 앞으로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를 상징하는 이름처럼 느껴집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발달장애인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 평생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존엄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곳을 만드는 일은 한 개인이 혼자 짊어져야 할 책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 작가는 자신의 아들이 살아갈 집을 찾는 과정에서 수많은 문을 두드렸고,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돌봄 현실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과 아들만을 위한 해결책이 아니라 또 다른 ‘피터팬’들을 위한 세상을 꿈꿨습니다.

 

아들을 시설에 보내고 난 뒤 몸 상태가 더욱 악화됐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오랜 시간 매일같이 함께했던 아들과 떨어진 뒤 그의 삶에는 커다란 빈자리가 생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 빈자리에는 한 가지 안도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내가 없어도 제원이는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이 전경철 작가가 마지막까지 바랐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을 연장하고 싶었던 이유도, 치료를 다시 받기로 한 이유도, 수많은 시설의 문을 두드렸던 이유도 결국 하나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자신이 없는 세상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전경철 작가가 남긴 ‘안녕, 피터팬’이라는 제목에는 어쩌면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7년 동안 품에 안고 지켜온 아들에게 건네는 인사이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삶을 정리하며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인사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이 언젠가 자신을 또렷하게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한때 자신을 사랑해주었던 아버지가 있었다는 따뜻한 흔적만큼은 남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치료도 받을 테니 6개월만 더 살게 해주세요. 아들이 살 집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 절박한 말은 이제 고인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 이어가고 싶었던 이유가 자신의 행복이나 명예가 아니라 오직 아들의 미래였다는 사실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전경철 작가는 떠났지만, 그가 27년 동안 아들을 사랑했던 시간과 자신이 떠난 뒤에도 아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마음은 ‘안녕, 피터팬’이라는 글과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됐습니다.

 

이제 전경철 작가는 고향 공주의 선영에서 긴 여정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생전에 가장 걱정했던 아들 제원 씨는 아버지가 마련해놓은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이어가게 됐습니다.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바랐던 것처럼, 부디 제원 씨가 아버지를 기다리며 힘들어하기보다는 안전하고 평온하게 자신의 하루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희미한 기억 속에서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보던 한 남자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전경철 작가가 남긴 사랑은 충분히 전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 아이의 손을 놓지 않았던 아버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도 아들이 살아갈 집을 먼저 찾았던 사람.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다른 가족들을 위한 공동체까지 꿈꾸었던 전경철 작가. 그의 삶은 한 아버지의 위대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 사회의 돌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기록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제는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편히 쉬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걱정했던 아들이 부디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그리고 고인이 그토록 만들고 싶어 했던 ‘네버랜드’의 꿈 또한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전경철 작가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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