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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알림센터

보리스님 나이|담양 금성산성 지킴이|고향|청산스님|자녀|다물무예

by 정보알림센터 2026.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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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님 나이|담양 금성산성 지킴이|고향|청산스님|자녀|다물무예

출처 MBN


보리스님은 전라남도 담양 금성산성 안 깊은 산중에 자리한 동자암을 지키며 살아온 스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주에서 태어나 평범한 삶을 살던 그는 인연을 따라 수행자의 길에 들어섰고, 이후 청산스님과 함께 특별한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과 세 자녀는 모두 출가한 수행자로서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독특한 삶을 이어갔습니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환경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들의 일상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동자암은 단순한 암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쉼터이자 수행의 공간으로 자리 잡으며 다양한 이들의 발걸음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2014년 청산스님의 입적이라는 큰 변화를 겪으면서도 그 삶의 방향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보리스님은 그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방식대로 삶과 수행을 이어가고 있는 인물로 전해집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담양 금성산성 동자암 지킴이 보리스님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어 보겠습니다.


❖ 법명 / 이름

보리스님

 

❖ 본명 / 속명

김경숙

❖ 나이

58세 (2026년 기준)

 

❖ 국적

대한민국

❖ 고향

제주특별자치도

❖ 가족 관계 / 집안

배우자 / 남편

청산스님 (송철수 / 2014년 별세)

자녀

황룡(아들) / 청룡(아들) / 구봉(딸)

 

❖ 담양 금성산성 위치 / 주소

전남 담양군 용면 도림리 산198-1

❖ 전라남도 담양 금성산성

전라남도 의병의 거점지로 알려진 담양 금성산성은 해발 603m의 산성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산성입니다. 이 산성은 연대봉, 노적봉, 철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성벽을 축조한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외성은 길이 6,486m, 내성은 859m로 이루어져 전체 길이는 7,345m에 달하는 복곽성입니다. 또한 산성 내부의 계곡을 감싸 안은 포곡식 석성의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곳은 전라남도 곡창지대의 동남쪽과 동북쪽을 방어하고, 경상남도 서부로 진입하는 길목을 지키는 중요한 요충지였습니다.

금성산성은 1991년 8월 24일 사적 제35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위치는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대성리를 비롯해 용면 산성리와 금성면 금성리 일대에 걸쳐 있습니다. 외성은 주로 능선 정상 바로 아래를 따라 한쪽 면만 쌓는 편축 방식으로 축조되었습니다. 반면, 지형 변화가 심한 구간에서는 양쪽을 모두 쌓는 협축 방식이 사용되었습니다. 축성 시기는 『고려사절요』의 기록을 통해 고려 우왕 6년 이전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왜구가 남원을 공격하기 전 이곳에서 군마를 쉬게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금성산성은 여러 차례 보수와 확장이 이루어졌습니다. 태종 10년에는 담양 금산 지역의 산성을 수축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선조 26년에는 정철이 금성산성 보수를 건의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인 1610년에는 담양부사 최동립이 파괴된 성을 정비하고 내성과 외성을 다시 구축했습니다. 이어 1622년에는 순찰사 황근중의 명으로 정계숙이 내성 안에 대장청을 건립했습니다. 이후 1633년에는 성첩이 다시 보수되었습니다.

금성산성에는 동문, 서문, 남문, 북문 등 네 곳의 출입로만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 외의 지역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출입이 어렵습니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 때문에 외부에서 성 내부를 확인하기 어려웠고, 임진왜란 당시에는 의병의 주요 거점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또한 갑오농민혁명 시기에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옹성은 규모가 크고 보존 상태가 뛰어난 편입니다.

 

성 내부에서는 총 16곳의 건물지가 확인되었습니다. 내성에는 4곳, 외성에는 12곳이 분포하며, 주변에서는 기와편과 백자편, 옹기편 등이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1995년에는 서문 옹성이 복원되었고,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외삼문과 내삼문이 복원되며 문루가 신축되었습니다. 2001년에는 동문이 복원되고 내성 보수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2008년에는 내성 일부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건물지 4곳과 담장 및 배수시설이 확인되었습니다. 출토된 유물은 주로 기와와 자기류로, 문양과 제작 특성을 통해 17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금성산성은 장성 입암산성, 무주 적상산성과 함께 호남을 대표하는 3대 산성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산성은 담양읍에서 북동쪽으로 약 6km 떨어져 있으며, 주변으로 여러 교통로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쪽으로는 정읍과 담양을 잇는 길이 있고, 동쪽으로는 전주에서 순창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습니다. 남쪽으로는 남원과 함양을 거쳐 광주로 연결되는 길이 있어 군사적·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 담양 금성산성 지킴이 보리스님 소개

보리스님은 전라남도 담양 금성산성 안에 자리한 작은 암자, 동자암을 지키며 살아온 수행자입니다. 속명은 김경숙이며 2026년 기준 58세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 태어나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아왔고, 이후 수행자의 길을 선택하며 특별한 삶의 여정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동자암은 금성산성의 충용문을 지나 약 100여 미터 정도 들어간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소박하지만 깊은 기운이 흐르는 공간으로 전해집니다. 입구에는 ‘동자암’과 ‘충무화랑학교’라는 표지판이 함께 세워져 있고, 주변에는 돌탑들이 둘러싸여 있어 마치 또 하나의 작은 성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곳은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수행과 배움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6년 당시 보리스님은 남편인 청산스님, 그리고 세 자녀와 함께 동자암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가족 모두가 출가한 수행자로서 살아가며, 일반적인 가족의 모습과는 다른 독특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청산스님은 어린 시절 출가하여 전국을 떠돌며 수행하던 중 제주에서 보리스님을 만나 인연을 맺었고, 이후 함께 수행의 길을 걸으며 세 자녀를 두었습니다. 가족은 한동안 제주에서 생활하다가 담양 금성산성으로 들어와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현대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멉니다. 동자암에는 전기와 수도가 따로 없으며, 생활은 촛불과 약수터의 물에 의존합니다. 부엌은 전통 방식 그대로 장작을 때어 밥을 짓는 구조이며, 화장실 또한 재래식이지만 청결하게 관리되어 불편함이 크지 않다고 전해집니다. 생활 속에서 나오는 재는 다시 퇴비로 활용하며 자연과 순환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생계 역시 자연과 사람의 도움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채소는 직접 재배하고, 쌀이나 생필품은 방문객들이 놓고 간 작은 정성으로 충당합니다. 보리스님과 가족들은 이러한 삶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으며, 자연 속에서 주어진 만큼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이들의 태도는 물질보다 마음의 풍요를 중요하게 여기는 수행자의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출처 뉴스타운

동자암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수행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충무화랑학교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몸과 마음을 단련합니다. 정치인, 학생, 군인, 일반인 등 다양한 이들이 신분과 지위를 내려놓고 수행자로서 머무르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고 전해집니다. 보리스님과 청산스님은 방문객을 단순한 손님이 아닌 함께 수행하는 존재로 여기며 진심으로 대했다고 합니다.

 

특히 자녀들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청산스님의 지도 아래 이루어진 것으로, 검도, 유도, 태권도 등 다양한 무예를 익히며 몸과 마음을 함께 수련해왔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되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일상은 자연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루의 시작은 일정한 시간이 아니라 새와 자연의 흐름에 맞추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이는 자연을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태도를 보여주는 부분으로, 수행의 또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14년, 청산스님이 오랜 투병 끝에 입적하면서 큰 변화가 찾아옵니다. 그는 생전에 금성산성을 지키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며 살아왔고, 실제로 매일 성곽을 돌며 청소하고 방문객들에게 역사와 의미를 설명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의 삶은 금성산성과 함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후에도 보리스님은 동자암을 지키며 그 뜻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1년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모습을 드러낸 보리스님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소박한 삶을 이어가며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눈 덮인 산성에서 정성껏 국수를 내어주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감동을 전해주었다고 합니다.

2026년에는 MBN 방송 "특종세상"을 통해 근황이 전해졌습니다. 보리스님은 여전히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으며, 장구를 치고 전통 춤을 즐기는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쁨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뷰에서는 “내가 즐겁게 살아야 떠난 스님도 기뻐할 것”이라는 말을 전하며 앞으로도 긍정적인 삶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전해집니다.


보리스님의 삶은 화려하거나 편리하지는 않지만, 자연과 함께하며 스스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금성산성의 고요한 풍경 속에서 이어지는 그의 하루하루는 단순한 일상이 아니라 하나의 수행이며, 삶 그 자체로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보리스님이 이어갈 삶과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깨달음을 전해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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