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박용만 프로필|나이|고향|학력|두산 가계도|가족|총리|경력
박용만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두산그룹 제9대 회장을 역임하며 그룹의 중공업 중심 전환과 글로벌 전략을 이끈 인물입니다.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학교에서 MBA를 마친 그는, 1982년 두산건설에 입사하며 본격적인 경영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기획조정실장 시절부터 그룹의 체질 개선을 주도하며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고, 이후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을 거쳐 2012년 두산그룹 회장에 취임했습니다. 그는 소통을 중시하는 리더십으로도 유명하며, SNS를 활용한 대중과의 교감으로 재계의 새로운 경영 문화를 제시했습니다. 또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내며 경제계 대표로서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했습니다. 회장직을 내려놓은 이후에도 컨설팅 회사 설립과 봉사활동, 방송 출연 등 활발한 사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이름
박용만
◇ 생년월일
1955년 2월 5일
◇ 나이
70세
◇ 고향
서울특별시
◇ 현 거주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 본관
밀양 박씨
◇ 학력
서울 혜화초등학교 (졸업)
서울 경기중학교 (졸업)
서울 경기고등학교 (69회 / 졸업)
서울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 / 학사)
미국 보스턴 대학교 (경영학 / 석사과정)
◇ 경력
한국외환은행 근무
두산식품 주식회사 이사
두산식품 주식회사 상무
두산그룹 기획조정실 실장
(주)두산 대표이사 사장
(주)두산 대표이사 부회장
두산산업개발 부회장
두산중공업 부회장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 부회장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 회장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주)두산 회장
두산그룹 회장
정동극장 이사장
마리아수녀회 후원회 회장
바보의 나눔 이사
국립오페라단 후원회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환경보전협회 회장
국제상업회의소(ICC) 집행위원
국립오페라단 이사장
두산경영연구원 회장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위원
서울대학교 이사
중앙대학교 이사
(재)같이걷는길 이사장
대한상공회의소 명예회장
예술의전당 이사장
벨스트리트파트너스 회장
◇ 가족관계
할아버지
박승진 (두산 창업주)
아버지
박두병 (두산 초대회장)
어머니
명계춘
형
박용곤(두산그룹 3대, 5대 회장)
박용오(두산그룹 6대 회장)
박용성(두산그룹 7대 회장)
박용현(두산그룹 8대 회장)
누나
박용언
남동생
박용욱
배우자 / 부인
강신애
장남
박서원 (1979년생)
며느리
조수애 (1992년생)
차남
박재원 (1985년생)
조카
박정원 (1962년생 / 현 두산 회장)
◇ 종교
가톨릭 (세례명 - 실바노)
◇ 저서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 2021년
◇ 주요 상훈
2000년 은탑산업훈장
2012년 금탑산업훈장
2021년 국민훈장 모란장
◇ 생애
박용만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이자, 변화와 소통을 중시하는 경영 철학으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는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두산그룹 창업주인 박승직의 손자이자, 연강 박두병 회장의 다섯째 아들입니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한국외환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보스턴 대학교에서 MBA를 취득하며 글로벌 감각을 갖춘 경영인으로서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1982년 두산건설에 입사한 박용만은 실무 경험을 쌓으며 경영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1995년에는 두산그룹의 기획조정실장을 맡아 그룹의 전략적인 전환을 주도했습니다. 그는 당시 두산이 중심으로 삼던 소비재 산업을 줄이고, 중공업 중심의 사업구조로 재편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주식회사 두산의 대표이사 부사장, 사장,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을 거치며 경영 전반을 책임졌고, 2012년 3월 31일에는 형인 박용현 회장의 뒤를 이어 두산그룹 제9대 회장에 취임했습니다.
박 회장은 그룹 회장으로 재임하는 4년 동안 사업 구조조정과 글로벌 전략에 힘썼으며, 2016년 3월에는 장조카인 박정원 현 회장에게 그룹 수장을 넘기고 자리를 물러났습니다. 이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선출되어, 2021년 3월까지 재계 대표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는 기업 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 제언과 국내외 경제인들과의 교류, 남북 경제 협력 문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했습니다. 2018년에는 남북정상회담의 경제인 대표단으로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기업 경영자 가운데서도 드물게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인물입니다. 대학 채용설명회에 직접 참석하는가 하면, 트위터를 통해 일반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일방적인 홍보보다는 쌍방향 대화를 중시하며, 일상적인 이야기부터 진지한 사회 현안에 이르기까지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습니다. 때로는 취업 준비생에게 격려를 건네고, 시험을 앞둔 학생에게 응원의 말을 남기는 따뜻한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사소한 실수나 가정 내 에피소드조차 유쾌하게 공유하며, 인간적인 면모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다만 논쟁의 여지가 있는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하며, 불필요한 분란은 피하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경영자로서의 그의 업적 중 하나는 두산그룹의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고, 특히 젊은 세대와의 접점을 넓힌 것입니다. 그가 직접 소통하며 브랜드를 알리는 전략은 채용 인지도 향상으로 이어졌고, 두산중공업은 한때 채용 선호도 순위 100위권 밖에서 5위권까지 올라서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SBS 다큐멘터리 <출세 만세> 시리즈에 출연해 재벌 회장의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대중에게 기업인의 삶을 솔직하게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2020년에는 국회에서 논의 중이던 상법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는 “경제가 정치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기업 관련 법안에 대해 당사자인 기업의 의견을 철저히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무작정 반대하기보다는 합리적인 대안을 검토하고, 법이 실제로 작동할 때의 부작용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2021년 11월 10일, 그는 두산그룹 내 모든 직책에서 공식적으로 사임했습니다. 이와 함께 그의 두 아들인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과 박재원 두산중공업 상무도 그룹 경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후 박용만은 완전히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 2월, 그는 ‘벨스트리트 파트너스(Bell Street Partners)’라는 컨설팅 회사를 설립하고 대표 업무집행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회사에는 그의 차남 박재원 씨도 참여하고 있으며, 두산에서의 경영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삶에서는 매우 정감 있는 인간미를 보여주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아내 강신애 씨는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여동생으로, 박 회장은 무려 11년간 짝사랑 끝에 결혼에 골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취미는 사진과 글쓰기이며,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신앙 생활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어릴 적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으며, 지금도 마리아수녀회 후원회장을 맡는 등 종교와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바보의 나눔’ 재단에도 꾸준히 기부하고 있으며, 몰타 기사단 한국 지회의 초대 대표를 맡은 바 있습니다.
회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오히려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가톨릭평화방송에서 기적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하기도 했고, 매년 겨울에는 두산 베어스 선수들과 함께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보육원을 찾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반찬 배달 등 다양한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며,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동차 선택에서도 그의 소박한 성향이 드러납니다. 박용만은 국산 경차인 기아 레이를 세 대나 보유하고 있으며, 이 차량을 직접 운전해 봉사활동 현장이나 약속 장소에 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큰 차는 골목길에서 주차나 진입이 번거롭지만, 레이는 그런 고민을 덜 수 있어 좋다”고 말하며 실용성과 배려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밝혔습니다.
박용만은 재계 중심에서 한발 물러난 뒤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회와 소통하며, 다양한 영역에서 의미 있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경영, 소통, 봉사, 신앙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그의 삶은, 단순한 기업인의 범주를 넘어 사람 중심의 리더십을 상징하는 한 사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박용만은 기업인으로서의 경력을 넘어, 사회와의 소통과 공공의 가치 실현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온 인물입니다. 회장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며 경제적 식견을 바탕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으며, 종교적 신념에 따라 봉사활동과 기부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습니다. 경차를 직접 몰고 봉사 현장을 찾는 모습이나, 방송을 통해 대중과 신앙을 나누는 모습은 그의 진정성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기업가로서뿐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도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차기 정부의 총리 후보로도 하마평에 오르며, 그 영향력과 공적 신뢰가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경제와 사회를 아우르는 균형 잡힌 시각과 소통 중심의 리더십은 앞으로도 주목받을 자산입니다. 박용만은 여전히 변화와 참여를 통해 자신의 역할을 확장해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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