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정 열사 나이|사망 현장|백골단이란?|가족 조카 정유인|학력 고향

대한민국 현대사에는 민주주의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던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1991년 5월, 불의에 맞서 거리로 나섰던 성균관대학교 학생 김귀정 열사는 경찰의 강경 진압 속에 스물네 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죽음은 당시 사회의 현실과 국가 공권력의 책임을 되돌아보게 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딸을 잃은 어머니 김종분 씨는 깊은 슬픔 속에서도 왕십리의 노점을 지키며 긴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김귀정 열사의 희생과 김종분 씨의 삶은 2021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왕십리 김종분》을 통해 다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영화는 민주화운동의 역사와 한 가족이 겪은 상실, 그리고 이웃들과 나누며 살아온 따뜻한 정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냅니다. 오늘은 불의에 굴하지 않았던 김귀정 열사의 삶과 그를 가슴에 품고 살아온 어머니 김종분 씨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이름
김귀정 (金貴井)
❖ 생년월일
1966년 8월 11일
❖ 나이 / 향년
24세 (2026년 기준)


❖ 국적
대한민국
❖ 고향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 사망일자
1991년 5월 25일
❖ 사망 발생 장소


서울 중구 퇴계로 4가 대한극장 건너편 진양상가 골목 입구
❖ 사망장소
서울특별시 중구 저동 인제대학교
❖ 본관
공개되지 않음
❖ 학력
서울 무학초등학교 (졸업)
서울 한양여자중학교 (졸업)
서울 무학여자고등학교 (졸업)
서울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 88학번 / 명예학사)



❖ 가족 관계 / 집안
부모님
아버지 김복배
어머니 김종분
언니
김귀임
남동생
김종수
조카
정유인 (전 수영 국가대표)




❖ 종교
공개되지 않음
❖ 김귀정 열사 사망 원인 / 사인
백골단 강경진압에 의한 흉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
❖ 김귀정 열사 묘지 / 묘소
경기도 이천시 민주화운동기념공원


❖ 백골단이란?
백골단(白骨團)은 1980~1990년대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시위 진압과 시위 참가자 검거를 담당했던 경찰 기동 인력을 가리키는 별칭이다. 푸른색 재킷과 청바지, 새하얀 헬멧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기존 진압 부대와는 다른 모습으로 시민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방석복을 갖춰 입고 대열을 유지하며 시위대를 밀어붙이던 진압 부대와 달리, 백골단은 가벼운 복장을 이용해 빠르게 시위 현장으로 돌진했습니다. 시위 대열을 무너뜨리고 군중 속으로 파고들어 참가자들을 쫓아가 붙잡는 방식은 이들을 단순한 진압 인력 이상의 공포스러운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시위 현장에서 이들의 등장은 곧 추격과 연행, 그리고 물리적 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는 신호와도 같았습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백골단은 국가 권력이 어떻게 거리의 저항을 억누르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구사대와 다른 강경 진압 조직들과 함께 이들은 권위주의 통치의 폭력성을 드러냈으며, 민주화운동의 역사 속에서 시민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준 국가 폭력의 표상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 김귀정 추모 다큐멘터리
왕십리 김종분 / 2021년 作
김진열 감독이 연출한 대한민국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2021년 11월 11일 개봉한 작품입니다. 1991년 민주화 시위 도중 목숨을 잃은 김귀정 열사와 그의 어머니 김종분 할머니를 중심으로, 남겨진 가족과 왕십리 인근 상인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딸을 잃은 어머니의 오랜 세월과 그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일상을 따라가며,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개인과 가족에게 남긴 상처를 조명합니다. 특히 왕십리에서 오랫동안 노점을 운영해 온 김종분 할머니의 삶을 통해 딸을 향한 그리움과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기억을 보여줍니다.
또한 할머니의 노점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오고 다양한 인연이 이어지면서, 한 개인의 삶을 넘어 지역 공동체의 유대와 연대의 의미를 전합니다. 《왕십리 김종분》은 김귀정 열사를 추모하는 동시에, 딸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이어온 김종분 할머니와 그 곁을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 불의에 굴하지 않은 김귀정 열사 소개
불의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친 김귀정 열사, 그리고 딸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어머니 김종분
대한민국 현대사에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자신의 청춘을 바쳤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고, 민주주의와 인간다운 삶을 위해 거리로 나섰던 이들의 이야기는 시간이 흘러도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김귀정 열사는 1991년 민주화운동의 역사 속에서 기억해야 할 인물입니다. 스물네 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갔던 학생이자, 가족에게는 누구보다 소중한 딸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한 개인의 안타까운 비극을 넘어 당시 사회가 마주하고 있던 공권력의 폭력성과 민주주의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김귀정 열사는 1966년 8월 11일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에서 아버지 김복배 씨와 어머니 김종분 씨 사이에서 1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으로 이주했으며, 서울무학초등학교와 한양여자중학교, 무학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후 1985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 불어과에 입학했지만,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학업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배움에 대한 뜻을 접지 않았던 그는 1988년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다시 입학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로 휴학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복학한 뒤에는 학업과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김귀정은 심산연구회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회장직을 맡기도 했습니다. 동아리연합회 총무부장으로도 활동하면서 학내 공동체의 여러 일에 참여했습니다. 대학 생활은 단순히 지식을 쌓고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만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사회는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과 권위주의적인 통치 방식이 충돌하던 시기였으며, 대학생을 비롯한 많은 시민이 거리에서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김귀정 역시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사회의 현실을 고민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청년이었습니다. 그에게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는 멀리 떨어진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마주해야 할 문제였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1991년은 한국 현대사에서 여러 사건과 희생이 이어졌던 해입니다. 그해 4월 명지대학교 학생 강경대가 시위 도중 경찰의 폭력으로 목숨을 잃었고, 이에 대한 항의와 공안통치 종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전국으로 확산했습니다. 시민과 학생들은 거리로 나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민주주의의 회복을 촉구했습니다. 김귀정도 이러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향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나선 그의 삶은 1991년 5월 25일 비극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김귀정은 서울에서 열린 '고 강경대 열사 살인 만행 규탄과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제3차 범국민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집회가 진행되던 중 서울 중구 필동2가 대한극장 맞은편 진양상가 인근에서 시위대가 골목으로 몰리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시위 참가자들을 추격하며 검거에 나섰고, 현장에서는 최루탄 사용과 극심한 혼란이 이어졌습니다. 김귀정은 이 과정에서 경찰의 강경 진압과 군중의 압박 속에 쓰러졌으며, 결국 압박에 의한 질식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스물네 살이었던 김귀정에게는 앞으로 살아갈 수많은 날과 이루지 못한 꿈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유가족과 동료 학생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겼으며, 사회적으로도 경찰의 시위 진압 방식과 국가의 책임을 둘러싼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망 직후에는 경찰이 시신을 확보하려고 영안실에 진입하려 했으나, 유족과 성균관대학교 학생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관계자들이 이를 막아섰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유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김귀정의 죽음이 제대로 기억되고 그 경위가 밝혀져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한 젊은 학생의 죽음은 그렇게 가족의 비극을 넘어 국가 권력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 묻는 사건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김귀정의 장례식은 1991년 6월 12일에 치러졌습니다. 장례 행렬이 마지막으로 모교를 찾으려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이어졌습니다. 당시 성균관 유림 측의 반대로 정문을 통한 운구가 허용되지 않았으며, 학생들이 무릎을 꿇고 간청한 끝에 도서관 옆 쪽문을 통해 장례 행렬이 이동할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사랑하는 딸이자 소중한 친구였던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길마저 순탄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김귀정의 유해는 처음에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에 있는 모란공원에 안치되었으며, 이후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이 조성되면서 2016년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어농리에 있는 민주화운동기념공원 묘역으로 이장되었습니다.




김귀정의 죽음은 법정에서도 중요한 쟁점이 되었습니다.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며, 1994년 서울민사지방법원은 국가가 유족들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당시 사망에 이르게 된 구체적인 경위를 모두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더라도, 경찰이 시위 참가자들을 짧은 시간 안에 검거하기 위해 좁은 골목으로 추격하는 과정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과 경찰의 지휘·감독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이후 대법원에서도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이 사건은 여러 진압 경찰관 가운데 직접적인 불법행위를 한 사람을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국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유가족의 노력은 국가 권력의 행사에도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김귀정 열사의 이야기는 그가 세상을 떠난 순간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오랜 세월 딸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어머니 김종분 씨가 있습니다. 김종분 씨에게 김귀정은 민주화운동의 역사 속에서 기억되는 열사이기 이전에, 함께 밥을 먹고 일상을 나누며 살아가던 사랑하는 딸이었습니다. 세상은 그의 죽음을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하지만, 어머니에게 딸을 잃은 슬픔은 어느 한순간에 끝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딸과 함께했던 기억을 안고 하루하루를 이어가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가족을 잃은 아픔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그리움이 되살아나는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김종분 씨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왕십리 김종분》은 바로 이러한 시간에 주목하는 작품입니다. 김진열 감독이 연출하고 2021년 11월 11일 개봉한 이 영화는 김귀정 열사와 어머니 김종분 씨의 이야기뿐 아니라, 왕십리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일상과 관계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왕십리역 11번 출구 인근에서 오랫동안 노점을 지켜온 김종분 씨의 삶을 중심으로, 한 가족이 겪은 상실과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생활의 모습을 차분하게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사건을 통과한 사람들이 어떤 시간을 살아왔는지 가까이에서 들여다봅니다.
김종분 씨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를 도와 노점에서 채소를 팔았으며, 결혼한 뒤에는 삼남매를 키우기 위해 다시 노점 일을 이어갔습니다. 비가 내리거나 눈이 오는 날에도 생계를 위해 자리를 지켜야 했던 노점은 가족의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일터였습니다. 그곳에는 물건을 사고파는 일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매일 오가는 손님과 이웃들이 서로의 형편을 살피고, 때로는 도움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쌓아갔습니다. 영화는 김종분 씨의 노점을 중심으로 꽃을 파는 상인과 채소를 파는 이웃, 우리슈퍼로 불리는 상인들까지 이른바 '왕십리 시스터즈'의 삶을 함께 담아냅니다. 서로 다른 사연을 지닌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계를 꾸려가면서도 오랜 시간 이웃으로 살아왔습니다.




김종분 씨의 삶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다른 사람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손님의 사정을 헤아려 외상을 주고, 급하게 돈이 필요한 이웃에게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건네기도 했습니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하기보다 상대방의 형편을 먼저 살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도움을 나누며 살아온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특별한 영웅담처럼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실천해 온 배려와 연대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영화는 노점이라는 작은 공간에 쌓인 관계를 통해 삶의 지혜와 온기가 어떻게 사람들 사이에서 이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왕십리 김종분》은 자녀를 잃은 유가족들의 아픔과 서로를 향한 위로에도 시선을 보냅니다. 김종분 씨와 이웃들은 각자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시대의 폭력과 예기치 못한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며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왔습니다. 영화 속 노점은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인 동시에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가고, 슬픔을 나누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공간입니다.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공동체가 반드시 거창한 구호나 특별한 활동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합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작은 도움을 건네는 일, 누군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 역시 공동체를 지탱하는 중요한 힘입니다.
2021년은 김귀정 열사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왕십리 김종분》은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딸을 기억하며 살아온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역사책에는 사건이 발생한 날짜와 장소, 당시의 사회적 상황이 기록됩니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 남겨진 가족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평범했던 일상이 어떤 모습으로 달라졌는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마음을 안고 어떻게 하루를 이어갔는지는 숫자와 기록만으로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영화는 바로 그 기록의 바깥에 있는 시간을 담아냅니다. 딸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과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노동, 이웃과 주고받은 정과 배려가 한 사람의 삶 속에서 어떻게 함께 존재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균관대학교 역시 김귀정 열사를 기억하기 위한 추모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매년 이천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서 추모제를 진행하고 있으며, 김귀정 장학금을 마련해 학생들에게 수여하고 있습니다. 교내에는 김귀정 생활도서관과 김귀정 마당이 조성되어 열사의 이름과 뜻을 기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한때 대학을 다녔던 학생의 이름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후배들이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더라도 과거의 희생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김귀정 열사는 수영 선수 정유인의 이모이기도 합니다. 정유인의 어머니 김귀임 씨가 김귀정 열사의 언니이며, 이 사실은 2021년 추모사업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두 사람은 김귀정 열사가 세상을 떠난 뒤 정유인이 태어났기 때문에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외모가 서로 닮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정유인은 이모를 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처럼 김귀정의 이름은 민주화운동을 기억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가족의 기억과 다음 세대의 삶 속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생애는 짧게 끝났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새로운 세대와 연결되고 있습니다.
불의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했던 김귀정 열사의 삶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여러 질문을 남깁니다. 시민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사회란 무엇인지, 공권력은 어떤 원칙에 따라 행사되어야 하는지, 부당한 일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어떤 자세로 진실을 마주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민주주의는 제도와 법률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소중하게 여기고 권력의 잘못에 책임을 묻는 사회적 노력 속에서 지켜집니다. 김귀정의 죽음을 기억하는 일은 과거의 비극을 되풀이해 이야기하는 데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살아갔던 시대를 돌아보고,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가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노력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왕십리 김종분》이 전하는 울림 역시 여기에 있습니다. 영화는 딸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보여주면서도 그 슬픔만을 앞세우지 않습니다. 생계를 위해 노점을 지키고, 이웃에게 온정을 나누고,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묵묵히 살아가는 김종분 씨의 모습을 통해 상실 이후에도 이어지는 삶의 힘을 전합니다. 거창한 말보다 따뜻한 행동으로 이웃을 대하고, 자신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살펴온 어머니의 모습은 우리 시대가 잊지 말아야 할 어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가 지켜온 노점과 그곳에서 이어진 인연들은 단순한 생계의 흔적이 아니라, 수십 년의 세월을 견디며 쌓아온 삶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스물네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김귀정 열사와 딸을 가슴에 품고 긴 세월을 살아온 김종분 씨의 이야기는 서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삶은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과 희생을 기억하게 하고, 다른 한 사람의 삶은 그 희생 이후에도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역사 속에서 이름으로 기억되는 사람과 일상 속에서 묵묵히 삶을 이어가는 사람, 두 사람의 이야기는 서로 맞닿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김귀정 열사가 꿈꾸었던 세상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우리는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가 살았던 시대와 그가 참여했던 민주화운동, 그리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더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바랐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불의에 굴하지 않았던 그의 삶과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된 수많은 사람의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몫이기도 합니다. 김귀정 열사의 이름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잊히지 않고, 그의 어머니 김종분 씨가 지켜온 따뜻한 삶의 흔적 또한 오래도록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김귀정 열사의 숭고한 뜻과 그를 사랑했던 가족의 마음을 기억하며, 그가 이제는 고통 없는 곳에서 편안히 영면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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