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 별세|장례미사|나이|장지|아들 안다빈 편지|아내 오소영|

한국 영화의 시간은 한 배우의 얼굴을 통해 흘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안성기는 아역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스크린 위에서 한 시대를 묵묵히 살아낸 사람이었습니다. 화려한 스타이기보다 늘 이야기의 중심을 지키는 배우로 관객 곁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연기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인물과 시대를 먼저 내세우는 선택을 반복해왔습니다. 그 조용한 태도는 스크린 밖의 삶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작품 목록보다 인간 안성기의 품성과 함께 기억됩니다. 안성기의 삶을 따라가는 일은 곧 한국 영화가 걸어온 길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성기 그의 명복을 빕니다.
❖ 이름 / 성명
안성기
❖ 사망일
2026년 1월 6일


❖ 향년
75세
❖ 배우 안성기 사인 / 병명
혈액암 투병 중 음식물이 목에 걸려 심정지 상태로 응급실 이송, 중환자실에서 의식 회복 못하고 사망
❖ 배우 안성기 가족
배우자 / 부인
오소영 (조각사 / 1960년생 / 1985년 5월 9일 결혼 ~ )
첫째 아들
안다빈 (미술가 / 1988년생)


첫째 며느리
이서희 (발레리나)
둘째 아들
안필립 (1991년생)
❖ 배우 안성기 영정사진
1987년,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촬영 현장에서 카메라에 담긴 한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서른다섯 살의 안성기가 가장 배우답게, 그리고 가장 사람답게 빛나던 순간을 붙잡아 둔 사진입니다. 그로부터 약 40년의 시간이 흐른 뒤, 그 사진은 한 배우의 생을 기리는 영정으로 다시 세상 앞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사진을 직접 고른 이는 평생을 함께한 아내 오소영 씨였습니다. 오 씨는 수많은 사진 앞에서 오래 머뭇거린 끝에, 결국 이 한 장을 선택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녀는 “이 사진 안에는 안성기라는 배우의 모든 시간이 담겨 있다”고 말하며, “남편이 가장 충만했고, 가장 그다웠던 순간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기고 싶었다”고 조용히 밝혔습니다. 화려함보다는 단정함이, 과장된 표정보다는 담담한 눈빛이 살아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첫사랑을 향한 순수한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던 그의 모습은, 스크린을 벗어난 일상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집에서는 늘 말수가 많지 않았지만, 행동으로 마음을 전하는 사람이었고, 사소한 일에도 상대를 먼저 살피는 다정함을 잃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배우로서 수많은 역할을 살아냈지만, 가족 앞에서는 언제나 한결같은 남편이었습니다.
1985년, 운명처럼 만난 두 사람은 부부의 인연을 맺었고, 그 이후의 시간은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이어졌습니다. 그는 바쁜 촬영 일정 속에서도 결혼기념일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고, 특별한 말이나 선물보다 함께하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겼던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오 씨는 그런 남편의 모습이야말로 가장 안성기다운 모습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한 배우의 전성기이자 한 인간의 품성을 담아낸 얼굴로 남게 되었습니다.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도, 그리고 일상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도 변하지 않았던 사람. 그가 가장 빛나던 시절의 눈빛을 통해, 많은 이들이 안성기라는 이름을 다시 한 번 따뜻하게 떠올리길 바란다는 아내의 마음이 그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전해집니다. 유족들은 고인의 안타까웠던 투병 모습보다 찬란했던 미소를 기억해달라는 당부를 남겼습니다.
❖ 배우 안성기 종교 / 세례명
천주교 (카톨릭) / 사도 요한
❖ 배우 안성기 장례미사
장소
명동성당
시간
1월 9일 (금요일) 아침 9시

❖ 배우 안성기 장지
양평 별그리다
❖ 아버지 안성기가 아들 안다빈에게 5살때 쓴 편지
"다빈아 이 세상에 네가 처음 태어나던 날 아빠를 꼭 빼어닮은 외모, 아빠 주먹보다 작은 네 얼굴을 처음 보는 순간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런데 벌써 이만큼 커서 의젓해진 모습을 보니 이 세상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구나. 아빠는 다빈이가 항상 겸손하고 정직하며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시간을 꼭 지킬 줄 알며 실패나 슬픔을 마음의 평화로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도 남자는 야망과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어려움 앞에서도 자신을 잃지 말고 끝까지 도전해 봐라. 동생 필립이가 있다는 걸 늘 기쁘게 생각하고, 동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형이 되거라. 이 세상에서 참으로 바꿀 수 없이 필요한 것은 착한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아라. 1993년, 아빠가"



❖ 배우 안성기 별세 / 추모 행렬
안성기는 지난 1월 5일 서울 순천향대학교병원에서 향년 7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난해 12월 30일 자택에서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은 뒤 응급실로 이송되었고, 이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오랜 시간 한국 영화의 얼굴이자 중심으로 살아온 그의 마지막은 담담했고, 그가 남긴 빈자리는 깊고도 넓게 남았습니다.
부고가 전해지자 영화계를 넘어 사회 각계에서 애도의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함께 작품을 만들었던 동료 영화인들은 물론, 그를 스크린을 통해 만나온 관객들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그를 떠올렸습니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명실상부한 국민 배우였는데 너무 일찍 떠나 안타깝다”며 깊은 슬픔을 전했습니다. 그는 안성기가 부산국제영화제의 개·폐막식 사회자와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영화제의 얼굴 역할을 해왔고,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으로서 젊은 영화인들을 키우는 데 힘을 쏟아온 점을 언급하며 “진짜 국민배우였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한국 영화가 어려움을 겪는 시기에 앞장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배우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더욱 크다고 말했습니다.


안성기와 오랜 시간 깊은 인연을 맺어온 배창호 감독 역시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배 감독은 연출한 18편의 작품 가운데 13편을 안성기와 함께했으며,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등 한국 영화사에 남을 작품들을 함께 만들어왔습니다. 그는 “우리 영화계를 위해 앞으로도 할 일이 많은 분이었는데 이렇게 일찍 떠나 애석하다”며, 함께 작업할 수 있었던 시간에 대해 든든했고 감사했다고 회상했습니다. 또한 고인이 남긴 작품들이 오랫동안 관객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배 감독은 원로 배우 신영균, 이갑성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등과 함께 영화인장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아, 고인을 대신해 관객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안성기에게 대종상 신인상을 안겨준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의 이장호 감독은 고인을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안성기가 굉장히 어질고 착한 사람이었으며, 배우로서뿐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감각도 탁월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안성기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곤 했으며 그 글을 읽고 감탄한 적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발표하지 않았을 뿐, 영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창작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는 평가였습니다.


정지영 감독은 남부군, 하얀 전쟁, 부러진 화살 등 여러 작품에서 안성기와 함께하며 깊은 교류를 이어온 인물입니다. 그는 “만감이 교차해 말을 정리하기 어렵다”며, 이제는 안성기가 한국 영화사에서 어떤 존재였는지를 남아 있는 영화인들이 정리해야 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한 배우의 죽음을 넘어, 한 시대의 기록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에 대한 숙제를 남겼다는 의미였습니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 역시 한국 영화계의 큰 별이 졌다며 안타까움을 전했습니다. 그는 안성기를 누구보다 따뜻하고 배려심 깊은 사람으로 기억했습니다. 매사에 세심했고 철저했으며, 무엇보다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이었다고 전해집니다. 현장에서의 태도와 사람을 대하는 자세 모두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이었다는 평가였습니다.


배우 박중훈은 여러 작품을 통해 안성기와 함께하며 그를 스타이자 스승, 그리고 친구 같은 존재로 여겨왔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는 에세이를 통해 혈액암 투병 중이던 안성기를 찾아가 “선배님이 계셔서 제 인생이 참 좋았다”고 말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말없이 웃던 선배의 얼굴을 보며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는 일화를 전했습니다. 그 고백은 많은 이들에게 안성기라는 사람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습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장문의 글을 통해 안성기의 출연작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그의 삶이 곧 한국 영화의 역사였다고 평가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랑과 존경을 동시에 받아온 인품과 덕망은 그 어떤 수식어로도 다 담기 어렵다고 전했습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역시 오랜 시간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어린이 곁을 지켜온 안성기에 대해 깊은 감사와 애도의 뜻을 전했습니다. 거리와 구호 현장에서 아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던 진심과, 늘 주변을 먼저 살피던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장례 기간 동안 장남 안다빈 씨도 국민들의 추모에 감사를 전했습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이던 그는 부친이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해 마지막 순간까지 곁을 지켰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국화꽃 사진과 함께 짧은 감사의 글을 남기며, 이어진 위로에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고인의 장례 미사는 서울 명동성당에서 거행되며, 이후 영화인 영결식이 엄수됩니다. 추도사와 헌화를 통해 동료 영화인들은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안성기는 경기 양평의 장지에서 영면에 듭니다. 스크린 위에서 수많은 얼굴로 살아온 배우 안성기는 그렇게 한 시대의 기억으로 남았으며, 그의 이름은 오랫동안 한국 영화와 함께 기억될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이제 안성기는 스크린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태도는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수많은 역할 속에서도 한 번도 인간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았던 그의 연기는 시간이 지나도 빛을 잃지 않습니다. 화려함보다 진정성을 선택했던 그의 길은 후배 영화인들에게 조용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한 시대를 함께 살아낸 배우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은 크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작별을 고하지만, 그의 이름은 한국 영화의 역사 속에서 계속 불려질 것입니다. 안성기라는 배우가 보여준 삶과 연기는 깊은 감사와 함께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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