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민요 이춘희 명창 프로필|나이 고향|판소리 사사|노래 모음|가족

우리 전통의 소리가 오늘날까지 살아 숨 쉬는 데에는 평생 한 길을 걸어온 소리꾼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경기민요를 대표하는 이춘희 명창은 어린 시절 우연히 들은 맑고 청아한 민요에 마음을 빼앗긴 뒤 평생을 소리와 함께 살아온 인물입니다. 서울 토박이로 태어난 그는 부모의 반대와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이창배 선생을 만나 본격적으로 경기민요를 배우며 자신의 길을 찾아갔습니다. 이후 안비취 선생의 문하에서 더욱 깊이 있는 소리를 익히며 무대 경험을 쌓았고, 오랜 노력 끝에 경기민요를 대표하는 명창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수많은 공연과 음반 활동은 물론 해외 무대에서도 우리 소리의 아름다움을 알렸으며, 아리랑의 세계적 위상을 높이는 뜻깊은 자리에도 함께했습니다. 이제는 자신이 평생 갈고닦은 소리를 제자들에게 전하며 경기민요의 맥을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역할까지 맡고 있습니다. 한평생 소리를 삶으로 삼아온 이춘희 명창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 사람의 음악 인생을 넘어 우리 경기민요가 걸어온 시간과 그 깊은 울림까지 함께 만나볼 수 있습니다.
◇ 이름
이춘희
◇ 생년월일
1947년 9월 18일
◇ 나이
79세 (2026년 기준)


◇ 국적
대한민국
◇ 본관
공개되지 않음
◇ 고향
서울특별시
◇ 신체
키
공개되지 않음
혈액형
공개되지 않음


◇ 가족 관계 / 집안
부모님
아버지
어머니
형제자매
공개되지 않음
배우자 / 남편
공개되지 않음
자녀
딸 서정화
◇ 소리 사사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산타령 보유자 이창배, 정득만선생 사사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안비취선생 전수장학생 지정
198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안비취선생 전수조교 지정
198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안비취선생 준보유자 지정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 지정
◇ 주요 이력 / 경력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지도위원 및 단원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사)한국전통민요협회 이사장
한국전통예술학교장


◇ 종교
공개되지 않음
◇ 개인 SNS
인스타그램 없음
◇ 유튜브 채널 / 구독자 수
유튜브 미운영


◇ 주요 앨범(음반) / 노래 모음
1993년 이춘희 민요가락
1996년 이춘희 12잡가
1998년 이춘희의 경기민요
2007년 삶과 소리 그리고 흔적
◇ 주요 수상
1986년 제주 한라문화제 대통령상 수상
1988년 KBS 국악대상 수상
1994년 한국방송실연자협회 공로상 수상
1996년 제23회 한국방송대상 국악인 대상 수상
2000년 제32회 대한민국 문화예술대상 수상
2004년 문화예술발전 유공자 (화관문화훈장) 서훈
2014년 독일음반비평가상
◇ 저서 / 책
2000년 경기 12잡가 – 근대서민예술가의노래 (공저)


◇ 경기민요 이춘희 명창 소개
우리의 전통음악 가운데에는 오랜 세월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삶의 희로애락을 노래해 온 소리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서울과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이어져 온 경기민요는 맑고 또렷한 음색, 섬세하면서도 흥겨운 가락, 그리고 우리네 삶의 정서를 담아낸 노랫말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습니다. 오늘날 경기민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바로 이춘희 명창입니다. 어린 시절 우연히 들었던 민요의 아름다운 음색에 마음을 빼앗긴 뒤 평생을 소리와 함께 살아온 이춘희 명창은 경기민요의 전승과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로 전해집니다.
이춘희 명창은 1947년 음력 9월 18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였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 노래를 자신의 인생으로 선택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전통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소리꾼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족의 반대도 있었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컸습니다. 그럼에도 노래에 대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가요를 공부하면서 자신의 길을 찾아갔습니다.
1965년 무렵 가요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이춘희 명창은 이후 민요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알게 되면서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1966년경 청구고전성악학원에서 경기민요의 대가 이창배 선생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창배 선생은 당시 민간 국악교육기관을 운영하며 많은 후학을 길러내고 있었습니다. 이춘희 명창에게 이 만남은 단순히 노래를 배우게 된 인연을 넘어 평생 이어질 소리 인생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가 처음 경기민요를 접했을 때 느꼈던 감동은 남달랐다고 합니다. 경기민요의 맑고 깨끗한 음색에 마음이 끌렸고, 길을 지나가다가도 어디선가 민요가 들려오면 발걸음을 멈추고 끝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쉽게 녹음된 음악을 반복해서 들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습니다. 스승의 노래를 귀로 듣고 기억하며 익혀야 했고, 배운 소리를 집으로 돌아가 끊임없이 연습해야 했습니다. 이춘희 명창은 걸어 다니면서도 소리를 연습하다가 전봇대에 부딪히기도 했다는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소리에 대한 열정이 컸던 것입니다.
그러나 소리의 길이 처음부터 확신으로 가득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민요를 배우는 순간에는 즐겁고 벅찼지만 돌아서면 ‘이것을 배워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좁은 공간에서 장구 하나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소리를 배우던 당시의 모습이 때로는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스승을 만나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면 그런 회의감은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이 길을 계속 가야 할지 고민하고, 다시 소리에 매료되기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갔습니다.
1969년에는 스승과 선배들과 함께 당시 최고의 무대로 손꼽히던 명동 국립극장 무대에 오르게 되었고, 1972년에는 전주대사습에서 입상하며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경기민요 역시 조금씩 새로운 평가를 받으며 예술음악으로서의 위상을 높여가고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즐기는 여흥의 노래라는 인식이 강했다면 점차 전문적인 예술 성악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인 변화 속에서 경기민요는 제도적인 전승 기반을 갖추기 시작했고, 1975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면서 국가 차원의 보호와 전승 체계를 갖추게 됩니다.


이춘희 명창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인연은 안비취 선생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이창배 선생에게 오랫동안 소리를 배운 뒤 안비취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면서 그의 음악적 역량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특히 1975년 안비취 선생이 경기민요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이후 이춘희 명창이 전수생으로 함께하게 되면서 그는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한 마음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최고의 명창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더욱 치열하게 자신의 소리를 갈고닦았습니다.
그 과정에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무대에 대한 두려움, 자신의 부족함과 싸워야 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피나는 노력을 이어갔지만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합니다. 공연을 위해 이동하면서 교통비가 부족해 버스를 한 번만 타고 나머지 길을 걸어가야 했던 기억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은 오히려 그에게 더 강한 의지를 갖게 했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실력으로 채우겠다는 마음으로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특히 1985년 첫 공연 발표회를 준비하면서는 무대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 남다른 훈련을 했다고 합니다. 무대에 올라가면 긴장으로 몸이 굳는 문제를 이겨내기 위해 무려 1년 동안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몸을 단련했습니다. 땀을 흘리고 다리에 근육이 생길 정도로 훈련한 끝에 무대에서 움직이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소리를 낼 수 있을 만큼 자신감을 키웠습니다.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부터 이춘희 명창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에는 제주한라문화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며 더욱 주목받았고, 이후 경기민요를 대표하는 소리꾼으로서 활동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1994년에는 경기12잡가 발표회를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의 음악세계를 선보였으며, 1997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로 지정되었습니다. 스승의 뒤를 이어 경기민요의 전승을 책임지는 위치에 오른 것입니다. 그에게 이 순간은 단순한 명예가 아니라 오랜 세월 스승에게 배우고 수없이 연습하며 걸어온 시간을 인정받는 뜻깊은 순간이었을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1997년은 이춘희 명창에게 기쁨과 슬픔이 함께 찾아온 해이기도 했습니다. 그해 1월 오랜 시간 가족처럼 의지했던 안비취 선생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넘어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던 안비취 선생을 잃은 슬픔은 매우 컸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스승의 계보를 이어 경기민요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도 더욱 커졌습니다. 이후 이춘희 명창은 자신의 소리를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후학을 길러내고 경기민요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데에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2000년에는 제32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받았으며 같은 해 사단법인 경기민요보존회 이사장을 맡았습니다. 2004년에는 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을 받았고, 2006년에는 대한민국 국악제 ‘명인에게 길을 묻다’에서 명인으로 선정되어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 밖에도 ‘남촌별곡’, ‘노들골에 단풍드니’, ‘춘풍별곡’, ‘일타홍전’, ‘토사랑’, ‘나는 춘향이다’, ‘언문외전’, ‘까막눈의 왕-세종어제훈민정음’ 등 다양한 경기소리극과 기획공연을 통해 경기민요를 무대예술로 확장해 나갔습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이어진 여러 공연은 경기민요가 단순히 전통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예술 장르와 만나 새로운 무대언어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경기소리극과 창작적인 공연, 해외 무대 등을 통해 경기민요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후배 소리꾼들과 함께 전통을 이어가는 작업도 꾸준히 진행했습니다.
해외에서도 그의 소리는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2011년 독일에서 열린 단독 공연에서는 한국어를 알지 못하는 관객들이 그의 노래에 집중하고 공연이 끝난 뒤 큰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언어는 달라도 음악을 통해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2012년에는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과정에서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직접 아리랑을 불러 우리 전통소리를 세계에 알리는 뜻깊은 무대에도 참여했습니다.
2014년에는 또 하나의 특별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춘희 명창이 참여한 ‘아리랑과 민요(Arirang and Minyo Singing)’ 음반이 독일음반비평가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음반에는 ‘긴아리랑’, ‘구아리랑’, ‘아리랑’, ‘노랫가락’, ‘창부타령’, ‘노들강변’, ‘태평가’ 등 대표적인 경기민요가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경기민요에 몸담아온 음악인의 소리가 해외에서도 음악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습니다. 이춘희 명창 역시 이 상을 개인의 영광을 넘어 경기소리 전체가 함께 받은 기쁨으로 생각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춘희 명창이 경기민요를 설명하면서 강조한 것은 바로 ‘서울소리’라는 점입니다.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전승되어 온 경기민요는 다른 지역의 민요와 비교해 밝고 맑으며 투명한 음색이 특징으로 이야기됩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단순히 음색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이 살아온 삶의 모습과 기쁨, 사랑, 이별, 한과 흥이 노래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는 데 경기민요의 매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들으면 귀에 남고, 오래 들을수록 그 안에 담긴 정서가 더욱 깊게 느껴지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춘희 명창에게 소리는 결국 자신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젊은 시절 스승이 던졌던 ‘노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하나의 답으로 이어졌습니다. 수많은 좌절과 고민, 경제적인 어려움과 무대에서의 긴장, 스승과의 이별까지 모든 시간을 지나온 뒤 그는 소리가 자신의 삶이었다고 돌아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소리를 잘하기 위해 살아온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소리와 삶이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로 느껴집니다.
그의 활동은 2026년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소리 인생 80년을 맞은 이춘희 명창을 중심으로 약 80명의 제자들이 함께하는 대규모 추석 특집 공연 ‘명창 이춘희의 한가위 대잔치’가 마련되어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9월 25일 오전 11시 10분 KBS 1TV를 통해 방송되는 이번 무대에서는 이춘희 명창과 제자들이 경기민요의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전해집니다.
공연의 문은 이춘희 명창과 제자들이 함께 부르는 ‘아리랑 연곡’으로 열립니다. 이춘희 명창의 본조아리랑을 시작으로 강원도아리랑과 밀양아리랑이 이어지며, 80명의 소리꾼이 함께하는 대규모 무대가 펼쳐집니다. 이어 경기소리의 중요한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인 십이잡가 무대에서는 이춘희 명창과 제자 권정희, 강효주가 ‘유산가’를 들려주며 ‘제비가’와 ‘소춘향가’ 등도 이어질 예정입니다.
젊은 소리꾼들이 참여하는 무대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풍경에 들다’에서는 유산가와 제비가, 선유가를 엮어 안무와 함께 선보이며 전통소리에 새로운 감각을 더합니다. 영화 ‘취화선’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이별가’는 피리 명인 최경만, 명무 진유림과 함께하는 무대로 꾸며져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할 예정입니다. 이희문, 신승태, 이미리 등 젊은 소리꾼들은 신민요와 휘모리잡가에 재담을 더해 전통의 흥과 재미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경기민요의 여러 매력을 세 가지 흐름으로 나누어 보여주는 무대도 마련됩니다. ‘풍년가’, ‘방아타령’, ‘자진방아타령’에는 재즈적인 색채가 더해지고, ‘오봉산타령’, ‘사발가’, ‘경복궁타령’은 무용과 결합해 시각적인 즐거움을 더합니다. 마지막에는 제자들이 ‘노랫가락’, ‘청춘가’, ‘신고산타령’, ‘궁초댕기’를 노래하고 이춘희 명창이 직접 ‘창부타령’을 들려주며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할 예정입니다.


돌이켜보면 이춘희 명창의 삶은 한 명의 소리꾼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경기민요가 우리 사회에서 자리 잡아가는 역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어린 시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맑은 민요에 마음을 빼앗겼던 소녀는 수많은 고민과 고난을 이겨내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경기민요 명창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배운 소리를 제자들에게 전하며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소리를 대하는 그의 마음입니다. 무대가 크든 작든 모든 공연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관객 앞에서는 작은 몸짓 하나와 시선 하나까지도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 무대에 선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책임감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부르는 한 곡의 노래가 곧 경기민요를 대표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연습해 온 것입니다.
이춘희 명창에게 경기민요는 단순히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이 아니라 현재도 살아 움직이는 음악입니다. 스승에게 배운 소리를 그대로 간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무대와 새로운 세대에게 전달하고, 국내를 넘어 세계의 관객들에게 우리 소리의 아름다움을 들려주는 것이 그의 음악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어 왔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돌아보면 수많은 순간이 지나갑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평생 한 가지 마음을 품고 걸어온 길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은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이춘희 명창에게 그 길은 소리였습니다. 어린 시절의 호기심으로 시작된 노래가 평생의 업이 되었고, 스승에게 배운 한마디 한마디가 오늘날 제자들에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의 목소리는 한 시대의 기억이 되고, 또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전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춘희 명창의 소리가 무대 위에서 오래도록 울려 퍼지고, 그 소리를 통해 경기민요의 아름다움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오랜 세월 한결같이 우리 소리를 지켜온 그의 삶은 ‘소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진솔한 답처럼 느껴집니다. 결국 소리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삶을 담고, 그 삶은 다시 듣는 사람의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맑고 깊은 경기민요의 울림과 함께 오랜 세월을 걸어온 이춘희 명창. 수많은 무대와 제자들, 그리고 한평생 이어온 소리의 시간이 앞으로 또 어떤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갈지 기대됩니다. 2026년 한가위에도 그의 목소리와 제자들의 소리가 어우러져 우리 곁에 따뜻한 울림을 전해주기를 바라며, 우리 전통음악의 소중한 맥을 이어가는 이춘희 명창의 앞날에 변함없는 박수와 응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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